다시 찾아온 ‘경우의 수’, 그리고 홍명보호의 믿을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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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팬들에게 ‘경우의 수’는 지긋지긋하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시즌마다 불청객처럼 찾아오던 이 단어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오는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요르단과 운명의 8차전을 앞두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한국은 4승 3무, 승점 15점으로 B조 선두를 달리고 있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살얼음판과 다름없다.

오만전 무승부의 나비효과, 턱밑까지 쫓아온 중동세

지난 20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오만과의 7차전 결과는 뼈아픈 실책이었다. FIFA 랭킹 23위인 한국이 80위 오만을 상대로 홈에서 1-1 무승부에 그친 것은 단순한 승점 1점 추가 그 이상의 타격을 입혔다. 전반 41분 황희찬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음에도 후반 막판 동점골을 허용하며 다잡은 승리를 놓쳤기 때문이다. 만약 이날 승리했다면 다가올 3월 A매치 기간에 본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 짓고, 11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대업을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만전 무승부로 인해 상황은 급변했다. 2, 3위인 요르단과 이라크가 승점 12점으로 한국을 3점 차까지 바짝 추격해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8차전 상대는 한국을 맹추격 중인 요르단이다. 요르단은 지난 아시안컵 4강에서 한국에 0-2 충격 패를 안긴 바 있으며, 최근 팔레스타인을 3-1로 제압하며 기세가 등등하다. 만약 이번 홈 경기에서 요르단에 패하고 이라크가 승리할 경우, 한국은 득실 차에 밀려 조 3위까지 추락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된다. 남은 일정이 이라크 원정임을 고려하면, 이번 요르단전은 사실상 본선 직행 티켓이 걸린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다.

수비 불안 속 피어난 희망, ‘황태자’ 이태석의 급부상

이처럼 대표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수비 조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확실한 대안으로 떠오른 선수가 바로 이태석(23·오스트리아 빈)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A대표팀에 갓 승선한 신예에 불과했던 그는 이제 홍명보호 수비 라인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자원으로 성장했다. 지난 2024년 11월 쿠웨이트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후, 그는 대표팀이 치른 13경기 중 12경기에 출전하며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친 왼쪽 풀백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는 이강인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공격 본능까지 과시했다. 수비가 흔들리는 현시점에서 공수 양면에 걸쳐 제 몫을 다하는 이태석의 존재감은 홍명보 감독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유럽 무대에서 진화한 왼발, 대표팀의 무기가 되다

이태석의 가파른 성장세는 유럽 진출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하다 지난 8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적한 그는 유럽 무대 적응기를 거치며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본래 장기였던 날카로운 왼발 킥 능력은 더욱 정교해졌고, 이적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의 전담 키커를 맡을 정도로 신뢰를 얻었다.

최근 소속팀에서의 활약도 눈부시다. 지난 일요일 볼프스베르거 AC와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그는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시즌 2호 골을 기록했다. ‘골 넣는 수비수’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오만전 무승부로 복잡해진 셈법 속에서, 한국이 요르단과 이라크를 연파하고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결국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이태석이 다가올 요르단전에서 대표팀의 분위기 반전을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