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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지향하는 군사학의 대부

서라벌군사연구소 이종학 박사
전장(戰場)이 바꿔놓은 삶…군사학으로 꽃 피워
인생관 담은 '동북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출간

동해안시대 기자 / newseun@hanmail.net입력 : 2017년 10월 31일
↑↑ ▲서라벌군사연구소인 고택 '풍석재'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돌이 되겠다"는 그의 호를 땄다./동해안시대
ⓒ 동해안시대
경주시 평동에 이사와 30년째 살고 있는 이종학 박사(88·충남대 군사학과·서라벌군사연구소장)는 국내 최고령 현직 교수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모교이자 교수로 재직했던 공군사관학교에 서울의 집을 내놓았고, 충남대에 10억원대 토지와 1만권의 책을 기증한 한국판 키다리아저씨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도 오전에는 연구를 하고 오후에는 밭을 가꾸는 농부이며, 지난 연말 88세 생일을 맞아 군사학의 교본이 되는 책을 펴낸 작가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연구하는 군사학은 인명을 살상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정신적 바탕을 놓아가는 토대의 학문이다. 더 나아가 그의 담론 속에는 가치관과 철학의 부재로 스스로 전쟁 같은 생활에 매몰돼 가는 현대인들에게 후반전 역전승의 책략을 알려주는 프로메테우스의 지혜가 녹아져 있다. 포항시 대흥동에서 태어나 6·25전쟁과 이어진 격동기에 그가 겪어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그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진주 같은 지혜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전쟁이 바꿔놓은 청년의 삶

520만명의 인명 피해를 낸 6·25전쟁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청년 이종학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29년 태어난 그는 포항 동지고를 3년여 늦게 졸업하게 된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청소년기에 퀴리부인 전기를 읽고서 화학자의 꿈을 키워왔지만, 전쟁은 그를 군대로 데려갔다. 그는 공사(空士)에서 매일 살상훈련을 받았다. 적을 죽여야 내가 이기고, 나라를 지키는 것. 직업군인이 되기 위한 이러한 훈련은 어느덧 그의 정신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상담 끝에 그는 마산공군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그때 공군병원 이봉균 중령은 인생의 고뇌와 삶의 고충을 솔직히 적은 그의 감상문을 읽고서 휴식과 안정을 배려해 주었다. 그는 독서와 휴식으로 재충전을 마치고 복귀해 어렵사리 공사를 졸업했다.
↑↑ ▲최정화 여사는 그의 자료를 컴퓨터로 정리하고 의견을 나누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이다./동해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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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지향하는 군사학 정립

그는 대전통신학교 등에서 연구와 교육실적을 인정받아 미국연수 기회를 가졌다. 그는 미국에도 여러 가지 갈등이 존재하며 고달픈 삶들이 상존한다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는 귀국 후 독학으로 군사학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의 바탕이 된 것은 놀랍게도 손자병법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 왔다. 그는 대령진급심사에서 좌절을 겪었다. 그때 그는 1년여만 버티면 20년 경력을 채워 상당한 군인연금을 확보하고 예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예편을 결심했다. 그것은 금과옥조처럼 연구해 온 손자병법에서 진퇴의 때를 놓치지 말라는 교훈의 실천이었다. 그러자 때마침 국방대학교 박형식 준장이 러브콜을 해왔다. 그가 평소 펼쳐온 ‘현대(군사)전략론’을 박준장이 높이 평가한 덕분이었다.

13년간 국방대에 재직하면서 그는 1980년 군사학 정교수가 되었다. 이는 그 자신의 영예이면서도 '평화의 군사학' 정립이라는 대한민국 국군의 영예이기도 했다.

1987년 국방대학교를 퇴직한 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그는 정년퇴임을 뒤로하고 더 늦기 전에 자기가 진정 하고팠고 해야만 할 일이 우선이었다. 군사학은 독서와 연구는 물론 경험과학으로서 답사와 실천이 뒤따르는 학문이다. 그때 당시 시가 3억원을 호가하는 서울의 주택을 팔아 공군사관학교에 기부했다.
↑↑ 이종학 박사가 2014년 자신이 편저한 웨드마이어의 '회고록과 논평'에 사인을 하고 있다./동해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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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고 가르치는 삶의 실천

그가 경주에 이사 온 때는 1987년이다. 평소 자신을 사로잡았던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경주에 있었다. 매소성전투와 기벌포해전을 수행했던 화랑도와 충효의 고장이 경주이다.

퇴직을 준비해 부인 최정화 여사와 일찍이 구입해 둔 경주의 고택 당호는 풍석재로 그의 호를 땄다. 풍석은 '큰 바위는 되지못할지언정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돌'이 되고픈 그의 염원이 담겨있다. 대문에는 '서라벌군사연구소' 명패를 달았다.

그는 이곳에서 30년간 오전에는 연구, 오후에는 농사를 짓는 삶을 최정화 여사와 함께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 일문과 영문을 포함한 40여권의 국내·외 저서를 출간했다. 국내외 주요 논문은 70여편에 이른다.

이사 온 지 5년째인 2002년 충남대에서 군사학부를 개설하는데 도와달라는 기별이 왔다. 그는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또다시 교단에 헌신해 충남대 군사학부를 설립했다. 국내 일반대학 최초의 군사학부였다.

그때 시가 10억원이 넘는 강화도의 토지와 1만여권의 장서를 충남대에 기부했다. 다시 시작한 강의는 지금도 이어져 그를 군사학 박사이자 최고령 대학교수로 이름을 올리게 했다.

◇'천천히 but 꾸준히' 인생론

"전쟁을 소홀히 한 민족이나 국가는 수모를 당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이해하고, 전쟁에 대비하라" 이종학 박사는 자신의 군사학을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는 요즈음 군사학을 넘어 손자병법을 응용, 인생학을 가르친다. '50대의 인생전략론'이다. 'Slow but Steady(천천히 그러나 꾸준히)'가 모토이다. 가장 평범한 이 말은 가장 예리하게 오늘날 중장년들의 폐부를 찌른다. 이 강의는 서울대학교 교수들 대상으로도 실시됐다.

지난해 11월5일 그가 출간한 '동북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충남대출판문화원)'는 577쪽 분량에 5부로 구성돼 있다. 저자의 철학과 단상은 물론 군사사학과 역사산책을 담고 있어 현대 인의 인생 필독서로도 손색이 없다.

살상의 군사학을 평화의 군사학으로 재정립했으며 받은 것을 모조리 나누었고 일평생 주경야독해 온 그의 삶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동해안시대 기자 / newseun@hanmail.net입력 : 2017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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