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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지리 및 풍수의 관점에서 본 경주의 지명


은윤수 기자 / newseun@hanmail.net입력 : 2019년 04월 25일
↑↑ ▲박성대(지리학박사) 영남식학풍수연구소장.
ⓒ 동해안시대

지명(place name 또는 geographical name)은 장소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표현된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해당 장소의 지리적 특성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문화, 역사, 언어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경주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필자는 지리학자로, 경주의 지명을 자연지리, 그리고 한국인의 전통 지리관인 풍수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단 지면 여건상 모든 내용을 설명하기는 힘들 듯해 특징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 목(項) 지형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는‘항(項)’이나‘-목’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대표적으로 경북 포항(浦項), 충남 장항(長項), 홍성군 구항(龜項)면, 울돌목(鬱陶項) 등이 있다. 지명에서의 목(項)은 생물의 목과 유사한 형태적 특징을 지닌 지형을 지칭하는 말로서, 산의 능선이 주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고개지형이나 하도가 급히 좁아진 부분을 가리킨다.

경주에서의‘목(項) 지명’은 노루목, 노루미기, 노리미기 등의 형태로 전체 24개소에서 나타난다. 특히 지명의 뒷요소‘-목(項)’은 경주 지역의 방언형으로 추정되는‘-미기’형태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이어서‘-매기’,‘-뫼기, ’,‘-모가지’,‘-모기’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중 고개지형에‘목(項)’지명이 붙는 대표적인 사례로 양북면 두산리의‘놀기미기’가 있다(그림 1). 고개지형은 근대적인 교통망이 발달되기 이전에 산을 넘을 때, 도보이동을 했던 과거 선조들이 주로 이용했던 지점이었다. 그것이 체력소모 및 거리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 ▲그림 1 - 양북면 두산리와 어일리를 연결하는 고개였던 놀기미기 고개.(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이러한 양쪽 산봉우리 사이 고갯마루의 모습이 아래에서 보면 마치 동물의 목처럼 매끈하게 움푹 파여 있기 때문에‘노루목’등의 친근한 지명을 붙이게 되었다. 두산리의‘놀기미기’는 두산리의 양지말에서 독안골을 거쳐 어일리로 갈 때 넘어가는 작은 고개이다. 이 고개는 어일리에서 두산리로 갈 때 또한 넘어야 하는 고개이다. 그래서 두산리의‘놀기미기’는 어일리에서‘노루미기’라는 지명으로 나타난다.
하천지형에‘목(項)’지명이 붙는 사례로 강동면 국당리의‘형산목’이 있다(그림2의 A지점). 이곳은‘형산(兄山)미기’,‘형산항(兄山項)’,‘양산(兩山)메기’라고도 불리며, 형산강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이 마주보고 있다.

↑↑ ▲그림 2 - 강동면 국당리의 형산목.(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 응달과 양지(陽·陰)

지명 양지와 응달(陽·陰)은 햇빛과 관련한 땅의 위치를 반영한다. 한자 지명에서‘양(陽)’은 산의 남쪽, 또는 강의 북쪽을 뜻한다. 이를테면, 한양이란 지명에는 한산(북한산)의 남쪽이자 한강의 북쪽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이를 산남수북(山南水北)이라 표현하며,‘양지’는 햇빛이 잘 비치는 남향의 산록에 입지해 사람이 거주할 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반면에‘음지’는 산북수남(山北水南)의 장소로서 산지의 북사면이다.

경주에도 양지와 음지를 의미하는 지명이 곳곳에 나타난다. 양지는 양지마을·양지말·양달·양지각단 등의 지명으로 나타나며, 음지는 음지마을·음지말·음달 등의 지명으로 나타난다. 특히 감포 팔조리, 내남 명계리, 내남 상신리, 양북 안동리, 현곡 무과리, 인왕동 등은 음양대응형으로 나타난다. 즉 동서로 흐르는 하천을 기준으로 남북에 음지마을과 양지마을이 각각 마주보고 자리해 있다(그림 3).

↑↑ ▲그림 3 - 음양대응형의 사례, 감포 팔조리의 양지마을과 음지마을.(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단일형으로는 양지 지명이 6개소로, 음지 지명인 암곡동 1개소에 비해 많이 등장한다. 음지 지명이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음지’의 지명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초 음양대응형이었던 지명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음지 지명은 점차 사라지고 양지 지명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는 아예 처음부터‘음지’쪽에 사는 사람들이‘음지’와 관련된 지명 만들기를 꺼려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기 좋은 마을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음지 마을 사람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러한 마음은 지명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암곡이라는 이름이‘골짜기가 깊다’는 뜻인데, 조선중엽‘명곡’으로 고쳤다가 다시‘암곡’으로 바꾸었다고 전해지며, 인왕동의 음지마을은 근래‘해맞이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 풍수에는 땅의 약한 기운을 북돋우고 반대로 강한 기운을 억누름으로써, 풍수적 길지로 만드는 비보(裨補)라는 개념이 있다.

지명에‘밝음(明)’이나‘해맞이’등의 용어를 넣는 것은 부족한 햇빛(陽)의 기운을 보충하는 일종의 지명 비보 행위다. 또한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 선조들의 의지의 발현이다.

■ 위(上)와 아래(下)

전국에는 위(上)와 아래(下)를 의미하는 지명이 곳곳에 나타난다. 경주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웃말/아릿말, 윗각단/아래각단, 상신/하신 등의 위·아래 대응형으로 나타나는 곳이 40개소로 가장 많았으며, 상 또는 하 단일형으로 나타나는 곳이 각각 6개소로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위·아래 지명의 분포는 지리적 관점에서 하천 상·하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림 4>는 내남면 명계리에 나타나는 상명·중명·하명 지명의 위치다. 

↑↑ ▲그림 4 -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의 상명·중명·하명 마을.(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명계리의 지리를 개괄하면, 노란 실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은 명계리의 행정구역이자 하나의 하천유역을 형성하고 있다. 하천 유역 내부의 중심 물줄기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명계천이며,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지천(枝川)들이 명계천에 합수된다. 여러 지천들을 합수한 물줄기(명계천)는 명계천 유역을 빠져나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형산강에 합수된다.

이때, 상명 마을은 명계천의 가장 상류 지역인 바탕골 일대를 나타내는 지명이다. 중명 마을은 상명 마을에서 흘러 온 명계천과 시리골 등에서 흘러 온 물줄기가 합수되는 지점에 붙은 지명이다. 하명 마을은 여러 골짜기 지천들을 합수한 명계천이 서쪽으로 흘러 유역 분지 수구(水口)에 이르는 지점에 붙은 지명이다. 결과적으로 하천의 상류 지역으로 지형상의 높은 곳에‘위’지명이 붙고, 하천의 하류 지역으로 지형상의 낮은 곳에‘아래’지명이 붙는다.

■ 풍수지리 관련 지명

1. 뱀산과 개구리봉(천북 갈곡리)

↑↑ ▲그림 5 - 길에서 조망되는 뱀산과 개구리산.(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보문에서 천북면 소재지를 향해 가다보면,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야트막한 산줄기가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숲이라고 하기에는 앙증맞은 작은 둔덕이 하나 있다. 그 둘을 연결해서 보면 흡사 들판을 기어가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그림 5). 그래서 지명 또한‘뱀산’,‘개구리산’으로 불린다.

수십 년 전 이곳 일대의 들판이 농지정리가 될 당시에도 뱀산과 개구리산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일부나마 보존되었다.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살아 왔던 주민들은 뱀산과 개구리산의 풍수적 의미와 기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훼손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수의 관점에서, 뱀산과 개구리산은 갈곡리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그림 6). 먼저 바람(風)의 측면에서, 갈곡리는 북쪽에 이렇다 할 산이 없기 때문에 매서운 겨울 북서풍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뱀 몸통과 같이 가늘고 야트막한 능선이나마 의지할 필요가 있었다.
↑↑ ▲그림 6 - 뱀과 개구리산은 갈곡리의 수구막이 산이다.(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물(水)의 측면에서 보면, 뱀산과 개구리산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신당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것을 보아, 천북 들판은 전체적으로 남고북저(南高北低)형이다. 그런데 뱀산과 개구리산이 있기 때문에 갈곡리의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형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갈곡리를 빠져 나간 개울물이 이곳 들판의 전체적 지형을 따라 곧바로 북서쪽으로 흘러가지 않고 남남서쪽으로 흐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갈곡리는 비록 산으로 불리기에 부끄러울 만큼 낮은 능선에라도 기대어 남향의 배산임수로 마을이 들어설 수 있었다.

또한 뱀산과 개구리산이 없었다면,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는 신당천의 모습이 갈곡리에서 훤히 보이게 된다. 풍수에서는 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물과 함께 모든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간다고 해석해 지극히 흉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뱀과 개구리산이 개울물과 신당천이 흘러 빠져나가는 모습을 가림으로써, 갈곡리의 기운과 재물을 단속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토 곳곳에는 풍수적으로 중요한 산이나 지형을 훼손을 방지하고 보전하기 위해 동물의 형상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는 곳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풍수를 배우지 않은 일반 사람들도 산이나 지형을 동물에 비유해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뱀산과 개구리산 또한 과거 농지정리 당시 훼손되지 않고 보전될 수 있었던 것도 선조들의 이러한 지혜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상목마을과 잠두산(산내면 내일리)

산내면 내일2리 상목골에는 잠두산(蠶頭山)이 있다(그림 7). 그 이름처럼 산의 모양이 누에를 닮았다. 임진왜란 때 류규화(柳圭化)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한 이후, 사람들은 이곳에‘상목(桑木)골’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누에는 뽕잎을 먹어야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림 7 - 산내면 내일리 상목골의 잠두산과 뽕나무밭.(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 동해안시대
누에는 뽕잎이 많을수록 잘 사는 법이다. 그래서 누에머리 앞쪽에 있는 산을‘뽕잎산’으로 불렀다. 또 마을 곳곳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치기를 했다. 마을과 산의 지명에‘뽕나무(桑木)’와‘뽕잎’을 넣고, 또 적극적으로 뽕나무를 심어 기르는 행위들은 모두 마을 주위의 산을 대표하는 잠두산이 많은 뽕나무를 먹고 기운을 떨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잠두산의 좋은 정기를 받고자 하는 바람이 녹아든 것이다.

※지난 3월13일자 기획연재 글(노계 박인로의 흔적을 찾아서)에서 성호경 서강대 명예교수가 지난 2017년 6월에 발표한 한국고전문학회 논문 '박인로의 <노계가> 창작배경탐색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은윤수 기자 / newseun@hanmail.net입력 : 2019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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