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뉴스 > 풀뿌리

발행인 발길따라 ⓷이견대

이견대 제 위치 찾아 '후손들에 역사 바로 물려줘야'
故황수영 박사 "현 이견정 뒷쪽 산 위가 이견대 일 것"
日 경제침탈 속 "문무대왕의 나라사랑 되새겨 봄직..."

은윤수 기자 / newseun@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26일
↑↑ ▲현재 이견대라고 일컬어지는 이견정 모습./은재원 기자
ⓒ 동해안시대

아베 일본 총리가 한국 경제를 향해 전면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제사회를 향해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무역 원칙"을 천명한 지 불과 두 달 만입니다. 그랬던 그가 정치외교 문제를 통상에 끌어들여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뒤흔들려 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이견대 앞에서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 "죽어서라도 이 나라를 지키려 했던 대왕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문무대왕은 힘과 지략 등 모두를 두루 갖춘 성군이었음이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지략을 배워볼까, 아니 조금이라도 깨우쳐 볼까 오늘 이견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견대에 올라보니 울분이 납니다. 20여 년 전 이견대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당시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한 학자가 말했지만 지금까지 논쟁만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견대는 감은사와 문무대왕릉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동해에 행차하여 대왕릉을 바라보며 부왕을 추모하던 곳이며 아울러 해룡을 만나 만파식적을 얻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감은사에 들러 묵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967년 이견대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故황수영 박사(2011년 작고, 전 동국대 총장)가 지난 2002년 불교신문에 게재한 회고록에 따르면 "1961년 감은사지 발굴 이후로 인접한 이견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965년 오악조사를 계기로 이견대지를 본격적으로 탐사하게 되었다. 당시 이견대 위치를 현재의 이견정(利見亭) 뒤쪽에 있는 산 위로 비정하는 주장과 대본리 해변가로 보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 ▲이견정에서 바라 본 문무대왕릉 모습./은재원 기자
ⓒ 동해안시대
故황 박사는 "산상설은 경주 유적에 밝은 최남주 선생이 주장하였고 해변설은 마을의 노인들에 의한 것이었다"며 "일단 촌로들의 말을 따라 그들이 말하는 지역을 1주일 동안 시굴해 보았다. 그 결과 몹시 교란되기는 했으나 분명한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이 자리를 이견대로 지목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자리는 조선시대의 역원(驛院)터 일뿐 신라시대의 이견대는 아닌 둣 하다"고 밝혔다.

또 "지난 1965년 시굴 직후 일단 이견정의 위치를 발굴지로 비정하기는 하였으나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보이는 '축성(築成)'의 자취를 찾지 못한 것이 못내 개운치 못하였다"면서 "그 뒤로도 해안가를 두루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그 자취를 발견하지 못하던 중 1995년 가을 예전에 최남주 선생이 말하던 산 위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곳은 옛 대본초등학교 뒷산인데 현재의 이견정애서 국도를 건너면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고 말했다.

故황 박사는 "이 지역을 새삼스레 주목한 것은 최남주 선생의 말 외에 문무대왕릉 관리인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데 그의 말이 현재는 없어졌으나 옛날에는 대본부락에서 감은사로 넘어 가는 길이 이 산으로 해서 나 있었다는 것이었다"며 "관리인의 인도로 산 위에 올라가 보았는데 과연 약 4∼500평의 너른 대지가 있고 그 삼면에 인공으로 축석된 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근에 신라시대 와편이 보였고 또 커다란 민묘와 석비 1기가 있었다. 석비는 조선시대 세워진 것인데 비문 가운데 '이견대(利見坮)'라는 글자가 보이기도 하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故황 박사는 "이곳이 과연 문헌에 보이는 이견대인지는 발굴 등의 정밀조사가 있어야 하겠으나 한 눈에 동해구가 조망되는데가가 서쪽으로는 감은사로 통하는 옛길의 존재도 짐작되었다.

이렇게 되면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처럼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동해의 문무왕릉을 참배한 뒤 만파식적을 얻은 다음 감은사로 가서 묵었다는 행적과도 일치된다"며 "그러므로 이곳이 이견대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그리고 현재의 이견정 자리는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역원인 이견원(利見院)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그리며 이견대를 찾았다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감은사에 들러 묵기도 했다고 전해지는 감은사의 동서삼층석탑 모습./은재원 기자
ⓒ 동해안시대
이렇듯 故황 박사 회고록과 삼국유사 등 다양한 문헌들로 비추어 봤을 때도 이견대가 산 중턱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료들을 수집 조사하고 산 위의 기와편 출토지를 중심으로 하루 빨리 정밀발굴이 이뤄져야 만이 이견대의 본래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후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길이기 때문 입니다.

■만파식적(萬波息笛)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라는 뚯. 대나무로 만든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없어지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홍수가 지면 비가 그치고 바람과 물결을 잦게 하는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 곧, 경주를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하니 더욱 신기한 일이다.

■이경대 가는 길
경북 경주시 감포읍 동해안로 1480-12.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불국사 쪽으로 가다 새로 뚫린 4번 국도를 타고 감포쪽으로 달린다. 이정표가 잘 돼있다. 4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31번 국도와 마주치는 3거리가 나온다. 이견대는 좌회전하면 된다. 우회전 하면 문무대왕릉 가는 길이다. 경주IC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이며 KTX를 타고 내리면 50, 70번 버스로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하차한다. 그리고 양남으로 가는 150번 버스를 타면 이견대와 문무대왕릉에 갈 수 있다. 시골버스라 거의 1시간 당 1대꼴이라 노치지 않아야 여행의 일정을 맞출 수가 있다.
은윤수 기자 / newseun@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26일
- Copyrights ⓒ동해안시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제47회 신라문화제` 추진상황 보고회 가져
국립경주박물관, ‘한가위 민속놀이 한마당’ 개최
동국대 경주병원, 19대 병원장에 이동석 교수 임명
한수원, ‘추석맞이 전통시장 장보기’
경주엑스포, 7~8월 관광객 작년보다 3배 증가
경북문화관광공사, `인권경영 선언식` 개최
월성본부, 추석맞이 전통시장 장보기 행사 시행
한수원, 12년 연속 금상(대통령상) 수상
안동휴그린G.C, `제4회 남성아마추어 골프대회` 개최
경주동국대 정창열 교수, 원자력산업대전 도지사 표창
포토
경주시의회(의장 윤병길)는 지난 23일 의회 본회의장에서 제244회 임시회 제2차 본회..
상호: 동해안시대 / 주소: (38111)경북 경주시 초당길 141번길 28 2F 동해안시대 / 발행인·편집인 : 은윤수
mail: newseun@hanmail.net / Tel: 054)742-0016 / Fax : 054)742-0017 / 청탁방지담당관 : 박노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89 / 등록일 : 2017년 04월 17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동철
Copyright ⓒ 동해안시대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878
오늘 방문자 수 : 4,090
총 방문자 수 : 6,891,318